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차승원' '김선호'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군'

by 생각하는 어떤사람 2025. 5. 2.
반응형

 

2024년 11월, 디즈니플러스는 단 4부작이라는 짧은 구성의 오리지널 시리즈 '폭군'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 짧음은 결코 가벼움이나 허술함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짧은 분량 속에 응축된 서사, 강렬한 연출, 무거운 주제 의식이 시청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박훈정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를 모은 이 작품은, 그의 전작 『마녀』 시리즈와 세계관을 공유하며 일명 ‘마녀 유니버스’의 확장을 알렸다. 초인적인 능력을 갖춘 인간의 존재, 비밀 실험체, 국가의 개입, 도덕적 질문 등 박 감독의 시그니처가 곳곳에 녹아 있다. 하지만 '폭군'은 이전보다 더 어둡고, 더 현실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이유는, 초능력이 아닌 ‘폭력’ 그 자체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

'폭군'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정부가 은밀히 진행하던 극비 실험에서 시작된다.'폭군 프로그램' 이라 불리는 이 실험은 군사적 목적으로 설계된 인간 개조 프로젝트다. 육체 능력과 감각, 인지 능력을 인위적으로 증강시켜 궁극의 병기를 만들려는 국가의 욕망이, 드라마의 근간이 된다.

이 실험은 그 윤리성이나 통제 가능성에 대한 검토 없이 오직 효율과 성과만을 중시한 채 밀실에서 강행된다. 그 결과 탄생한 ‘샘플’들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러나 이런 비밀은 오래 감춰질 수 없다. 미국 정보기관이 실험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분실된 실험체를 둘러싼 다국적 세력의 충돌이 시작된다.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를 둘러싼 추격전은 국가 간의 정보 전쟁, 기업의 탐욕, 개인의 복수심이 얽히며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등장인물

이야기의 중심 인물 채자경(신혜선)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캐릭터다. 처음에는 전직 용병이자 프로그램을 추적하는 민간 전문가처럼 등장하지만, 서서히 그녀의 정체가 드러난다. 자경은 이 실험과 단순한 연관을 넘어, 그 자체의 산물이자 핵심 열쇠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실험의 대상이었고,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제거당한 채 훈련받아온 존재다. 그러나 자경은 인간성과 괴물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자신의 탄생이 폭력의 산물임을 자각하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인간으로 남으려 한다. 하지만 주변의 배신과 죽음, 국가의 냉혹한 대응은 그녀를 다시 전투의 최전선으로 몰아넣는다.

자경이 진정으로 괴물이 되어가는 순간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선택하고 수용하는 순간이다. 그녀는 프로그램이 만든 폭군이 아니라, 스스로의 분노와 상처로 인해 폭군이 되어가는 인간이다.

임상(구교환)은 전직 국정원 요원으로, 국가를 위해라면 어떠한 도덕적 경계도 넘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자경과 다시 마주하게 되며, 과거의 기억과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실감한다.

임상은 철저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인물이다. 그에게 국가란 신념이 아니라 업무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가 자경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흔들리는 모습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제, 즉 인간의 양심과 책임에 대한 질문을 대변한다. 그는 괴물을 만든 인간이며, 그 괴물에게서 눈을 돌릴 수 없는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 실험의 총책임자인 최국장(이무생)은 냉철한 전략가이자, 본질적인 공포의 화신이다. 그는 말한다. “이건 국가를 위한 일이다.” 그러나 그 말은 책임 회피이자 정당화일 뿐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폭군이 아니며, 자신이 그 폭군을 통제하지 못할 상황이다.

최국장은 극 중 내내 직접적으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지만, 그의 지시와 결정 하나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 그는 국가 시스템 그 자체로 기능하며, 윤리와 법, 감정과 인간성을 배제한 절대적 명분의 얼굴을 한다. 이 인물은 『폭군』이라는 제목이 단지 초인이 아닌, 시스템 전체를 겨냥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분석

'폭군' 은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전제를 부정한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끊임없이 되묻는다. “누가 괴물을 만드는가?”, “괴물은 자신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가?”, “폭력을 선택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작품은 과학적 실험이 가져온 결과보다,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참사에 집중한다. 강화된 존재들은 단순히 유전자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그리고 관계 속에서 상처 입고, 분노하고, 결국 스스로 선택한 결과로 괴물이 되어간다. 그 지점에서 '폭군'은 단순한 SF 액션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품은 심리 드라마로 승화된다.

에피소드가 마무리된 후 삽입된 플래시백 장면은 자경의 과거와 프로젝트의 기원을 암시한다. 15년 전, 자경은 이미 실험체였다. 그녀를 훈련시킨 인물, 그 실험을 설계한 과학자들, 그리고 실험실에서 태어나 살아남은 또 다른 샘플들의 존재는 다음 시즌에 대한 명확한 복선이다.

더불어 이 세계관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타 실험국가'나 '상위 조직'의 존재 가능성도 충분하다. '마녀'와의 접점이 시즌2에서 직접적으로 연결될 경우, 두 세계관은 통합된 하나의 유니버스로 진화할 수 있다.

결론

'폭군'은 짧지만 강렬했다. 액션의 스타일이나 이야기의 속도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 속에 담긴 철학적 질문이었다. 이 드라마는 말한다. “괴물은 유전자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공포와 탐욕에서 태어난다.”

박훈정 감독의 세계관은 다시 한 번 인간성의 어두운 면을 응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끝난 후, 우리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 안의 폭군은 과연 누구인가?”

반응형